흔히 말하는 ‘역학(易學)’이라는 학문분야는 이른바 동양오술(東洋五術)의 술수를 익히는 데에 필요한 이론적인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四象)의 체계와 황제내경을 중심으로 하는 오행(五行)의 체계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동양오술은 명(命), 점(占), 상(相), 의(醫), 산(山) 다섯 분야에 속한 모든 술수들을 총칭하는 일컫는 말이다.
2. 동양오술의 구분
만유의 근본이 되는 일자(一者) 무극이 분화해 나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일생이(一生二), 일생삼(一生三)의 방식이 그것이다. 일생이의 방식은 2태극, 4사상, 8팔괘로 분화하여 8x8=64도수의 사상론(四象論), 주역(周易)체계를 형성하고, 일생삼의 방식은 3삼재, 9구궁으로 분화하여 9x9=81도수의 오행론(五行論), 기문(奇門)체계를 형성한다. 황제내경이나 도덕경은 기문체계의 주요 텍스트에 해당하여 동양학문의 의학과 수행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양오술의 이론적 뿌리를 형성하는 사상론과 오행론은 사실상 별개의 원리로 발달되어 오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음양론을 바탕으로 두 이론이 합쳐져서 응용되어 왔다. 동양오술을 구성하는 술수(術數)들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명(命) | 점(占) | 상(相) | 의(醫) | 산(山) |
당사주, 오성술, 자미두수, 명리학 |
육효, 육임, 기문둔갑, 태을수, 구성학 |
수족상, 성명학, 마의상법, 풍수지리 |
경락이론을 이용하는 침, 뜸, 약, 한의학 | 주술, 부적, 굿, 무술, 호흡, 선도수련 |
동양에서 역학의 체계는 ‘인간은 소우주’라는 기본적인 전제로부터 연역되어 나간다. ‘인간이 소우주’라는 전제를 ‘인간이 신을 대신해서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을 지배하는 위대한 존재’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대우주인 하늘, 즉 우주자연이 운행되는 이치 그대로가 인간의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관계에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소우주인 것이다. 물론 우주자연의 운행 이치가 인간의 삶에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해서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명리학은 천문학의 응용 분야
위의 구분표에서 보다시피 명리학은 점복류와는 다른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천문학의 응용분야에 속한다. 하늘의 행성들이 인간의 성정과 길흉화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명리학이다. 명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역학분야는 오랫동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과거시험을 통해 해당 업무를 보는 관리를 뽑아서 쓸 만큼 그 과학성과 활용도를 인정받아 왔다.
명(命)과 점(占)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명학은 삶의 패턴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즉 관운이나 재운같은 것이 어떠어떠한 경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걸 예측하는 학문이고, 점학은 삶의 경향곡선과는 상관없이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사안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즉 가부(可否)를 판단하는 학문이다. 두 분야가 서로 얽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부를 판단하는 것은 명학이 점학만 못하고 경향을 파악하는 것은 점학이 명학을 따를 수 없다.
동양오술 전반을 알아야 공부가 발전한다
옛 선인들의 공부방향은 동양오술 전반을 통관하는 관점에서 진행되어 왔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이 황제내경을 읽어도 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황제내경을 단순히 의학서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면의 동양학 분야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동양오술 전반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고, 고서의 대부분은 학습자가 그러한 사전지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 속에서 쓰여진 것이다. 황제내경 속에 명학, 점학, 의학, 상학, 선도학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의학에 관련된 부분만 뽑아서 쓰려고 하니 백년을 공부해도 공부가 늘지 않고, 활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멋대로 엉뚱하게 해석해서 쓰게 될 수 밖에 없다.
동의보감을 보면 병증에 대한 약초의 방제 방법뿐만 아니라 아들딸을 구별해서 낳는 법부터 시작해서 귀신을 속이는 법, 사람을 투명하게 만드는 법까지 망라되어 있다. 그때문에 미혹한 자들은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보존유산에 들어간 게 창피스럽다는 말까지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동의보감 자체가 의학서이자 약학서이고, 상학서이자 풍수지리학서적이고, 명학서이자 선도학서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동양학 공부를 하기에 사전지식을 전혀 쌓지 못한 사람들이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나타나는 통탄스런 폐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공부하게 될 명리학이 동양오술의 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양학 공부의 한 축에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느 정도 명리학에 대한 식견이 생기고 나면 더 큰 공부를 위해 점학, 의학, 상학, 선도학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야만 동양학 전반에 걸쳐있는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명리학 자체도 더 크고 넓게, 더 자세하고 확실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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